상처에 꽃을 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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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꽃을 심는 사람
한여름을 뜨겁게 달구던 햇빛의 단내가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새벽바람은 어느새 가을을 데려오는 서늘한 손길이 되어 잠든 나뭇잎 사이를 조용히 흔든다.
계절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수통골의 골짜기도 말라 있었다.
한때 졸졸졸 노래하던 물길은 멈추고 마른 계곡을 살리기 위해 어디선가 물을 실은 트럭이 와 메마른 골짜기에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먼 훗날을 생각한다.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과학이라는 거대한 산맥은 인류가 만들어낸 수많은 질고와 고통을 과연 새로운 창조의 힘으로 넘어설 수 있을까.
그러나 어쩌면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과학의 크기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른 계곡에 물을 다시 흘려보내듯 사람의 마음에 생명의 물을 흘려보낼 수 있는가.
영동복지관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질문에 작은 답을 보여주었다.
수업은 마치 서로의 마음이 리듬을 맞추는 한 편의 왈츠 같았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존중하고, 누군가의 침묵을 기다려주고, 서로의 마음에 작은 자리를 내어주는 것.
그 안에서 나는 존중이야말로 가장 조용하고 깊은 치유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어르신들의 마음이 열리고 눈빛이 달라지는 순간마다 나 또한 함께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수업을 잘했다는 뿌듯함보다 더 깊은 곳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이 참 귀하구나’ 하는 감사가 차올랐다.
그 아름다운 시간 뒤에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촘촘한 준비가 있었다.
준비된 자료 하나, 간식 하나, 따뜻한 안내 한마디까지.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하지 않는 마음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특히 웰다잉에 대한 깊은 가치의식과 선각적인 시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회복지사 원영 선생님.
그와 함께하는 이 시간은 어느새 매년 기다려지는 한여름의 작은 축제가 되었다.
그에게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상처가 있다.
귀한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엄마의 슬픔.
그러나 그는 그 슬픔을 자신의 삶 속에 가두어 두지 않았다.
상처를 안고도 일어섰고, 슬픔을 품은 채 다시 사람을 향해 걸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 세상에 좋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나는 그녀를 볼 때마다 삶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그의 해맑은 미소에는 삶을 다시 선택한 사람의 맑음이 있다.
그의 투명한 의지에는 깊은 슬픔을 지나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한 힘이 있다.
많이 울어본 사람의 눈빛은 쉽게 흐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고, 더 투명하고, 더 따뜻해진다.
그래서 그의 아름다움은 상처가 없어서 생긴 아름다움이 아니다.
상처를 지나왔음에도 세상을 향해 다시 웃을 수 있는 사람의 아름다움이다.
삶에서 상처를 피할 수는 없다.
누구에게나 뜻밖의 이별이 오고, 예고 없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절망의 벽 안에 오래 머물 것인가.
아니면 그 벽을 조금씩 밀어내고 다시 세상으로 걸어 나올 것인가.
상처를 없애려고 애쓰는 대신 그 상처를 잘 일구어 그 안에 다시 씨앗을 심는 것.
나는 그것이 인간이 자신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애도라고 생각해보지만 어렵다.
슬픔은 깊이가 되고, 눈물은 투명함이 되고, 견딘 시간은 지혜가 되고, 아픔을 견뎌낸 마음은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넓이가 된다.
그리고 어느 날 상처였던 자리에서 작은 꽃 하나가 피어난다.
그 꽃은 자신만을 위한 꽃이 아니다.
누군가 지친 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향기가 되고, 누군가 절망한 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작은 빛이 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상처는 다른 사람의 희망이 된다.
그것이 인간이 삶을 살아내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상처가 사라져서 평온한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채 평온을 만들어가는 것.
아픔이 없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아픔을 지나온 뒤에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것.
그를 만난 것은 내게 또 하나의 감사의 열매다.
오늘도 살아 있고, 누군가를 만나고, 마음을 나누고, 한 사람의 삶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
그 모든 것이 감사하다.
오늘 아침, 차오르는 햇살처럼 모든 사람의 마음에도 작은 소망 하나가 떠오르기를.
그리고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상처는 당신의 끝이 아닙니다.
그곳은 어쩌면 아직 피지 않은 꽃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 자리에서 다시 살아갑니다.
상처를 꽃으로, 눈물을 향기로, 삶을 감사로 바꾸면서.
글/김영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