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밀어내지 않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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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는 유난히 작다. 물총새처럼 쉼 없이 파닥거리며 살아가는 작은 생명이라,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일까. 밥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 애쓰는 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진다.
게다가 아가는 수족구에 걸려 온몸에 물집이 잡히고, 접히는 살마다 붉은 발진이 번져가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은 아이만 아픈 것이 아니었다. 함께 지켜보는 가족 모두의 마음도 덩달아 긴장하고 예민해진다. 대신 아파줄 수 없는 할머니의 마음은 더욱 작아지고, 안타까움은 깊어만 간다.
그런데 아픈 소식은 아가뿐만이 아니었다. 절친의 남편은 허리 시술을 받았고, 또 다른 친구는 발목 인대가 늘어나 한동안 걷는 일조차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가만히 둘러보니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아픔이 있었다. 몸이 아픈 사람도 있고, 마음이 아픈 사람도 있으며, 말하지 못한 걱정을 품고 하루를 견디는 사람도 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삶은 저마다의 무게를 안고 오늘을 건너가고 있었다.
어제는 시민대학 첫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감정의 정비소, 마음이 치유되는 순간들」
몇 년 만에 다시 시작하는 오프라인 강의였다. 반가움보다 긴장이 앞섰고, 한 분 한 분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며 좋은 만남이 되기를 조용히 바랐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한 수강생께서 자신과 맞지 않는 수업이라며 중간에 취소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순간 강의실의 공기가 차갑게 달라졌다. 남겨진 분들도 당황하셨고, 나 역시 아무렇지 않은 척 수업을 이어갔지만 마음속에는 작은 파문이 오래도록 남았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왔지만 그 장면은 쉽게 떠나지 않았다. 탁월한 강연가가 꿈인 만큼, 마음이 컸던 만큼 작은 흔들림도 내게는 크게 다가왔던 것 같다. 살다 보면 내 꿈대로, 내 마음대로,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 그럴 때 현실은 날 선 칼날처럼 마음을 툭 스치고 지나간다.
오늘도 계곡의 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 갈 길을 흐른다. 나도 글을 쓰며 마음속에 맺힌 감정들을 천천히 흘려보낸다. 글은 상처를 완전히 없애 주지는 못하지만, 상처를 견딜 수 있는 숨을 되찾게 해 준다.
문득 깨닫는다. 예전의 나는 속상한 감정이 찾아오면 어떻게든 밀어냈다. 그것을 약한 마음이라 여겼고, 빨리 사라져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감정을 공부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만나며 알게 되었다. 기쁜 감정만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속상함도, 서운함도, 두려움도, 우울함도 모두 살아 있는 마음이 보내는 소중한 신호였다. 편도체가 반응해 몸을 긴장시키는 것도 결국 나를 지키기 위한 자연스러운 작용이다.
감정은 적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알려 주는 언어였다.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정받을 때 비로소 제자리를 찾아간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간다. 감정을 이기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기꺼이 품을 줄 아는 사람이 진짜 단단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잠자리들이 풀밭 위를 훨씬 날아다닌다. 아침 햇살은 풀숲 사이로 조용히 스며들어, 말없이 내 어깨를 토닥인다. 어둠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빛을 만나 조금씩 옅어지는 법이다. 마음도 그렇다. 외면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바라보는 순간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새로운 아침은 오늘도 조용히 내게 말을 건넨다. "지금의 아픔도 언젠가는 너를 조금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그 말을 믿으며 숨을 크게 쉬어 본다. 숨이 깊어진다는 것은 마음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오늘도 삶은 완벽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다. 아픔과 기쁨을 함께 품고도, 다시 걸어갈 수 있기에 감사하다.
글/김영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