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고객)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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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고객)을 읽어라
뻥치지 마라.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살기 좋아지는 현실이다.
“제가 다 해드리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이번에 도와주시면 확실하게 보답하겠습니다!”
말만 들으면 내일부터 세상이 달라질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약속한 사람의 설명만 길어진다.
처음에는 “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추진 중입니다.” 조금 지나면 “여건이 어렵습니다.” 마지막에는 “제 진심만은 알아주십시오.”
국민은 진심을 감상하려고 표를 준 것이 아니다. 일을 맡기려고 표를 준 것이다.
식당에서 갈비탕을 주문했는데 주인이 빈 뚝배기를 가져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떻겠는가?
“갈비를 넣으려는 제 마음만은 뜨거웠습니다.”
마음이 뜨거워도 배는 고프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말로 끓인 갈비탕으로는 국민의 허기를 채울 수 없다.
실현 가능성과 재원은 따져보지도 않은 채 박수부터 받으려는 정책은 국민을 기만하는 정치가 되기 쉽다. 희망을 주는 것과 희망고문을 하는 것은 다르다. 할 수 있는 일을 약속하고, 약속한 일은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
공약이 공약(空約), 빈 약속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필자가 사람을 만나며 경계하게 된 유형도 있다. 말을 아주 크게 하는 사람이다. 만나자마자 인맥을 펼치고, 계획을 늘어놓고,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귀가 솔깃하다. ‘대단한 분이구나.’
그러나 몇 번 만나고 나면 생각이 바뀐다. ‘대단한 것은 실력이 아니라 이야기의 규모였구나.’
이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낚시꾼이 두 손을 벌리며 말한다.
“지난번에 잡은 물고기가 이만했어!”
들을 때마다 물고기가 커진다. 처음에는 붕어였는데 나중에는 참치가 되고, 다음 모임에서는 고래가 될 기세다.
물고기는 놓쳤다는데 크기는 계속 자란다. 어떤 사람의 업적도 그렇다. 결과는 보이지 않는데 설명만 무럭무럭 자란다.
정치든 사업이든 인간관계든, 말의 크기보다 실천의 크기가 중요하다.
필자 주변에도 선심성 약속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에 도와주시면 제가 이렇게 해드리겠습니다.” “박사님 일이라면 제가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정작 일이 성사되고 나면 자기 일하기만 바쁘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필요한 일이 생기면 연락이 온다.
“박사님, 요즘 왜 이렇게 뜸하십니까?”
뜸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것이다.
더 피곤한 사람은 작은 도움 하나를 주고 오래도록 공치사하는 사람이다.
“그때 제가 도와드렸잖아요.” “제가 아니었으면 어려우셨을 겁니다.” “제 덕을 보신 거죠.”
고맙다는 인사를 했는데도 끝이 없다. 도움은 한 번 받았는데 감사 인사는 할부로 내야 한다. 이쯤 되면 호의에 이자가 붙는 셈이다.
이를테면 커피 한 잔을 사준 사람이 만날 때마다 말한다고 해보자.
“그때 제가 커피 샀잖아요.”
나중에는 커피 향보다 생색이 더 진하게 남는다. 차라리 다음부터는 내가 사는 편이 마음이 편하겠다.
제발, 공치사하지 마라.
도움의 가치는 상대가 기억할 때 커진다. 내가 자꾸 설명하면 오히려 작아진다. 상대의 고마움을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공을 발표하는 순간, 따뜻했던 호의가 부담스러운 청구서로 바뀐다.
물론 필자도 속으로 생각할 때가 있다. ‘이 관계를 여기서 정리해야 하나?’
그러다가도 그 사람의 외로움이 보이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보여 그냥 손을 잡고 갈 때가 있다. 그렇다고 상대가 속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줄 알면 곤란하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조용히 지켜본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박수를 쳤다고 모든 말을 믿는 것도 아니다. 누가 책임을 지는지, 누가 핑계를 대는지, 누가 작은 성과를 크게 포장하는지 보고 있다.
민심을 읽는다는 것은 국민이 좋아할 말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국민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 살피고,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지 판단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일이다.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 누가 실행할 것인가. 언제까지 할 수 있는가. 안 되면 어떻게 설명하고 바로잡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서 “다 해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쉽다.
세상은 뿌린 만큼 거두는 법이다. 다만 관계에 뿌린 씨앗은 내가 원하는 날짜에 수확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밥 한 끼 샀다고 내일 큰 부탁을 들어달라면 그것은 베풂이라기보다 선불 거래에 가깝다.
요리조리 계산하며 사는 사람들을 보면 자신만 영리한 줄 안다. 누구를 만나면 이익인지, 누구에게 잘하면 도움이 되는지, 누구는 이제 쓸모가 없는지 바쁘게 계산한다.
그러나 사람을 손익계산서처럼 대하면, 상대도 언젠가는 나와의 관계를 계산하게 된다.
살다 보면 계산이 필요하다. 사업에도 판단이 필요하다. 다만 사람을 대할 때까지 계산기부터 꺼내지는 말자. 내게 도움이 될 때만 친절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차가워지는 태도는 오래 숨길 수 없다.
처음부터 성실하게 대하라. 필요할 때만 찾아가서 친한 척하지 마라. 작은 약속부터 지켜라. 못 지킬 일이 생기면 먼저 설명하라.
무언실행도 좋다. 말없이 해내면 얼마나 멋진가. 그러나 공적인 일을 맡았다면 필요한 설명은 해야 한다. 말할 때는 정직하게 말하고, 말한 뒤에는 행동으로 증명하면 된다.
“제가 하겠습니다”라는 말보다 “이만큼 했습니다. 남은 일은 이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보고를 듣고 싶다.
말을 가르치는 필자가 왜 말보다 행동을 강조하느냐고?
오랫동안 말을 가르치며 느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지키지 않는 약속을 멋지게 표현하는 기술은 결국 신뢰를 잃게 만든다. 반대로 서툰 말이라도 꾸준한 실천이 받쳐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민심(고객)를 읽어라.
정치인에게 민심이 있다면, 사업가에게는 고객의 마음이 있고, 우리 모두에게는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이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에 앞서,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살펴야 한다.
식당에 들어온 손님이 말한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주세요.”
그런데 주인이 음식 철학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저희 육수는 말입니다. 선대부터 내려오는 비법으로 열두 시간을 고아서….”
손님은 지금 육수의 역사가 궁금한 것이 아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밥을 먹고 싶은 것이다. 열두 시간 고았다는 설명을 듣다가 남은 십 분마저 지나가면, 아무리 맛있는 국물도 속이 타는 손님에게는 반갑지 않다.
스피치 코칭도 마찬가지다. 면접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학생에게 강사의 경력만 늘어놓는다고 자신감이 생기겠는가?
“제가 삼십 년을 가르쳤고, 강연을 수천 번 했고….”
그 경력이 학생의 막힌 말문을 열어주는 데 쓰여야 한다. 학생이 어디서 막히는지 듣고, 어떤 질문을 두려워하는지 살피고, 한 문장이라도 자기 말로 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때 비로소 경력이 고객에게 의미가 된다.
상대를 읽는다는 것은 눈치만 보거나 무조건 비위를 맞추라는 뜻이 아니다. 필요한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정직하게 제안하고, 약속한 만큼 책임지는 것이다.
때로는 듣기 좋은 “다 됩니다”보다 솔직한 설명이 더 큰 신뢰를 만든다.
“이 부분은 가능합니다. 다만 여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그 방법은 어렵지만, 이렇게 해보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당장은 덜 달콤해도, 나중에 실망시키지 않는 말이다.
필자가 말하는 ‘I’m You, 고객 중심’도 여기에 있다. 내 입장에서 자랑할 거리를 찾기 전에 상대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을 찾는 것이다.
고객이 고개를 끄덕인다고 모두 만족한 것은 아니다. 웃으며 돌아갔다고 다시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말하지 못한 불편은 없었는지, 기대했던 도움이 되었는지 한 번 더 살펴야 한다.
뻥은 줄이고, 실천은 늘려라. 생색은 줄이고, 책임은 늘려라. 내 말에 취하기 전에,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민심을 읽으면 정치가 달라지고, 고객을 읽으면 경영이 달라지고, 상대를 읽으면 관계가 달라진다.
박수는 약속을 할 때도 나오지만, 신뢰는 그 약속을 지킨 뒤에 남는다.
“저 사람, 말은 참 잘해.” 그 칭찬도 좋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말을 듣고 싶다.
“저 사람은 내 마음을 알아주고, 한 말은 지키더라.”
글/화술경영가 윤치영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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