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하지 마라, 핑 삐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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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하지 마라, 핑 삐치지 마라
툭하면 핑하고 삐지는 사람의 마음 크기는 얼마나 될까?
종재기, 밥그릇, 냄비, 가마솥….
사람은 대개 자기 마음의 그릇 크기만큼 세상을 담으며 사는 것 같다. 같은 말을 들어도 어떤 사람은 웃어넘기고, 어떤 사람은 사흘 동안 곱씹는다. 말한 사람은 벌써 잊었는데, 들은 사람은 그 말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수시로 꺼내 먹는다.
섭섭함은 이상하게 유통기한도 길다. 오래 묵힐수록 맛까지 진해진다.
“그 사람이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 말이 나오면 마음속 장부가 펼쳐진다.
내가 밥 산 날, 차 태워준 날, 경조사 챙긴 날, 전화 먼저 건 날…. 기억력이 이렇게 좋았으면 학창 시절 전교 1등도 했을 텐데, 꼭 섭섭한 일 앞에서만 천재가 된다.
그러다가 결심한다.
“다시는 내가 먼저 연락하나 봐라.”
상대는 그 결심이 내려진 줄도 모르고 잘 먹고 잘 잔다. 잠을 설치는 쪽은 혼자 마음속에서 절교식을 치른 사람이다.
가령 모임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해보자.
“형님, 오랜만입니다!”
반갑게 인사했는데 상대가 얼굴만 한번 보고 휙 지나간다. 순간 마음이 핑 돌아선다.
‘사람이 좀 잘나가더니 달라졌군.’
자리에 앉아서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다. 옆 사람이 “오늘 음식 맛있네요”라고 해도 대답이 시큰둥하다.
“음식이 맛있으면 뭐 하나. 사람이 맛이 갔는데.”
결국 참다못해 묻는다.
“아까 인사를 했는데 왜 그냥 가셨어요?”
상대가 화들짝 놀란다.
“아이고, 미안해. 화장실이 급해서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왔어.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한 사람은 인간관계가 무너지는 줄 알았고, 다른 한 사람은 괄약근이 무너지는 중이었다.
상대는 배가 아팠는데 나는 마음이 아팠다. 화장실 한번 다녀오면 끝날 일을, 혼자 인간성 평가까지 마쳐버린 것이다.
우리는 가끔 물어보면 한 문장으로 끝날 일을 짐작으로 소설 열 권을 쓴다.
제목은 『그 사람은 왜 나를 무시했는가』. 후속편은 『내가 사람을 잘못 봤다』.
정작 상대는 그 소설에 출연한 사실조차 모른다.
종재기에 물을 가득 담으면 조금만 건드려도 넘친다. 마음도 그렇다. 내 기대와 내 기준, 인정받고 싶은 마음으로 끝까지 채워놓으면 다른 사정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이 말 한마디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서운하면 입을 닫고, 어떤 사람은 화가 나면 입부터 연다. 핑 삐져서 관계를 얼어붙게 하기도 하고, 욱해서 그동안 쌓아온 관계를 한순간에 태워버리기도 한다.
나는 한참 교도소로 강의를 다니던 때를 떠올린다.
수감자들에게 그곳에 오게 된 사연을 물으면, 욱하는 성질을 다스리지 못했다고 털어놓는 이들이 있었다. 순간의 분노로 폭력을 휘두르고, 끝내 살인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까지 저지른 이야기도 들었다.
그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화가 치밀었던 순간은 짧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행동이 남긴 피해와 책임은 짧지 않았다. 피해자와 가족의 삶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남겼고, 자신의 삶과 가족의 일상까지 무너뜨렸다.
“그때 한 번만 참았더라면….”
뒤늦게 그 순간을 되돌리고 싶어도, 이미 벌어진 일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물론 범죄의 사정을 모두 ‘욱해서’라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는 없다. 분노가 행동의 책임을 덜어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절실히 느꼈다.
욱하는 성질머리, 고쳐야 한다. 화가 시키는 대로 몸과 입을 움직이게 두어서는 안 된다.
교도소 담장 밖에서도 욱해서 상처를 주고 일을 그르치는 일은 적지 않다.
회의 중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책상을 치고, 거래처의 말투가 거슬린다고 전화를 끊고, 가족과 다투다가 가장 아픈 말을 골라 던진다.
“당신은 평생 그 모양이야.” “너한테 뭘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그리고 진정되면 말한다.
“내가 그때 잠깐 욱해서 그랬어.”
하지만 상대가 받은 상처는 ‘잠깐’이라는 말로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한순간 내뱉었지만, 상대는 오래도록 그 말을 안고 살아갈 수 있다.
“나는 뒤끝 없어. 한번 쏟아내면 끝이야.”
이 말을 자랑처럼 하는 사람도 있다.
본인은 속이 시원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이제부터 아프기 시작한다. 자기는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옆집에는 이제 불이 붙은 셈이다.
욱해서 깨뜨린 신뢰를 다시 붙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어떤 관계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말을 가르치는 나는 이 대목을 특히 강조하고 싶다.
말의 실력은 화가 났을 때도 드러난다. 평소에는 누구나 좋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존심이 상하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어떤 말을 선택하느냐가 그 사람의 관계를 결정한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을 때 잠깐 멈출 수 있는가. 상대를 찌르는 말 대신 문제를 풀 말을 찾을 수 있는가.
그 힘도 배워야 한다.
화가 치밀면 우선 입을 잠깐 닫아보자. 숨을 고르고, 당장 결론을 내리지 말자. 대화를 계속하기 어렵다면 이렇게 말해도 된다.
“지금은 감정이 올라와 말을 거칠게 할 것 같습니다. 조금 진정한 뒤에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잠깐 동안 체면이 깎이는 것 같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체면도, 관계도, 일도 지켜줄 수 있다.
화가 난 채로 쓴 문자도 바로 보내지 말자.
전송 버튼을 누르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지만, 수습하는 데는 몇 달이 걸릴 수 있다. 다음 날 다시 읽어보면 등골이 서늘해질 때도 있다.
‘이걸 보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어젯밤에는 논리정연한 명문장이었는데, 아침에 보니 거래 중단 요청서다. 속 시원한 한마디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내 밥그릇을 걷어차는 발길질이었다.
그렇다고 서운함과 분노를 무조건 눌러두라는 뜻은 아니다. 참기만 해도 문제가 생긴다. 직장에서 삼킨 화를 집에 가져와 반찬에 시비를 걸기도 한다.
된장국은 아무 잘못이 없다. 그런데 그날따라 짜다는 소리를 듣는다.
서운한 일은 차분하게 꺼내야 한다.
“아까 그 말씀은 조금 서운했습니다. 어떤 뜻으로 하신 건가요?”
부당한 요구에는 선을 그어야 한다.
“그 요청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가능한 방법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뜻을 분명히 전할 수 있다. 오히려 목소리가 차분할수록 말의 무게가 더해지는 순간도 많다.
물론 나도 늘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남에게는 “마음을 넓게 쓰세요”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정성을 들인 일을 누군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속이 출렁인다.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오래 해왔는데….’
내 마음의 그릇에도 손잡이가 달려 있는 모양이다. 누가 그곳을 건드리면 금세 들썩인다.
우습게도 사람은 자기 그릇만큼은 크게 평가한다.
“나는 사소한 것 신경 안 써.” “나는 한번 풀면 깨끗해.” “나는 뒤끝 없어.”
그런데 조금 더 들어보면 이상하다.
“뒤끝은 없는데, 8년 전 그때 그 말은 아직도 이해가 안 가.”
뒤끝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보관 상태가 좋은 것이다. 날짜까지 기억하니 마음속에 기록관리실을 운영하는 셈이다.
“나는 다 잊었어. 그런데 그 사람이 먼저 사과는 해야지.”
다 잊었다면서 사과받을 항목은 정확하다. 원금에 이자까지 계산 중이다.
남이 삐지면 속이 좁은 것이고, 내가 삐지면 사정이 있다. 남이 화내면 성질이 고약하고, 내가 화내면 오죽했으면 그랬겠느냐고 한다.
그러니 남의 그릇을 재다가도 내 쪽을 돌아봐야 한다.
‘나는 사실을 확인했는가?’ ‘지금 이 말이 문제를 풀어줄까?’ ‘이 순간이 지나도 이 말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그 질문을 할 수 있는 틈을 만드는 것이 마음공부다.
나이가 든다고 마음의 그릇이 저절로 커지지는 않는다. 살아온 세월만큼 고집만 단단해질 수도 있다. 다른 사정을 들어보고, 내 짐작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거칠게 말했을 때 먼저 사과하는 동안 마음은 조금씩 넓어진다.
종재기에서 밥그릇으로, 밥그릇에서 냄비로, 냄비에서 가마솥으로.
그리고 큰 가마솥에도 묵은 것을 비워낼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 끝난 다툼과 오래된 서운함을 계속 데우고 있으면 새로운 사람을 따뜻하게 맞을 여유가 없어진다.
나는 가마솥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따뜻한 밥 한 끼 나눌 수 있는 사람.
그러려면 그릇을 키우면서 불 조절도 배워야겠다. 아무리 큰 가마솥이라도 성질대로 불을 때면 함께 먹을 밥을 태워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글/화술경영가 윤치영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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