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쉼표
기사 본문
마음의쉼표
매년 논산문화원에서 인성교육을 한다.
토요일 또렷한 눈망울을 가진 강여중학교 학생들은 총총한 걸음으로 들어와 샛별처럼 앉아 있다.
가슴이 뛰는 생기를 품은 청소년들이다. 뿌듯함이 차오르고 벅찬 감동에 심장이 부풀어 오르는 듯하다.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씨앗 하나 심을 수 있다는 것, 나는 천상 교육자임이 참 좋다.
미역국을 끓여 놓으셨다며 사랑의 수호천사가 불러주셨다. 비 오는 어스름한 날, 훌훌 두 그릇이나 먹었다.
따뜻한 정이 온몸에 스며들고 오장육부가 든든해졌다. 삶을 지탱하는 힘은 때로 이토록 소박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현충원 트래킹이 있는 날.
무심한 비가 회색빛 운무를 산야에 데려다 놓았다. 흐릿해진 산의 윤곽과 가을의 첩첩 회화가 곳곳을 채색한 풍경은 장관이었다.
비에 젖은 산야는 그윽한 심상의 빛을 안겨주었다.
아름다움은 반드시 선명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흐릿함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잠시 멈추어 바라볼 때 비로소 마음에 스며든다.
가을을 깊게 숨 쉬며 느낄 수 있어 감사했던 주말의 비 오는 날. 돌아보면 감사뿐이다.
주일에는 딸의 종일 연주와 사위의 근무, 남편의 출장 뷔페 일정으로 혼자 아가와 시간을 보냈다.
호기심 천국. 에너지의 원천. 생명의 발아기.
아가가 돌아간 후 실신하듯 잠이 들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오롯이 아가와의 접촉은 고난도의 체력을 요구하지만, 그 시간은 강력한 생기의 활화산이다.
몸은 지쳐도 마음은 충만해진다. 작은 손짓과 웃음 속에서 생명이 얼마나 눈부신 것인지 다시 배운다.
수통골에 사는 내게 최고의 신선은 자연이다.
아무도 없이 혼자 누리는 물소리가 귓가에 생경하다. 한 올씩 떨어지는 나뭇잎의 정기, 뻗은 나뭇가지에 살랑이는 잎사귀는 마음보가 좁아 애태우는 내 심층을 가만히 달래준다.
때로는 내 가슴에 히말라야 산 하나 품게 만드는 스승이다.
고요한 숲, 흐르는 물소리, 내 심연을 충분히 적셔주는 풍경의 달램.
이따금 호반새의 지저귐은 웅크린 어깨를 한없이 펼치게 한다. 자연은 흔들리면서도 제 계절을 살아내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내려놓는 지혜를 말없이 가르쳐준다.
가을이 익어가듯 내 마음도 깊어지기를 바란다. 작은 감정에 갇히지 않고, 삶의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단단한 마음을 갖고 싶다.
좁다란 마음의 줄기를 헤치고, 가느다란 마음의 길을 넓히어, 오늘도 널따란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내 마음에 쉼표 하나를 찍는다.
쉼표는 끝이 아니라 다음 문장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잠시 멈추어 나를 돌아보고, 익숙해서 놓쳤던 아름다움을 발견하며,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다시 헤아리는 시간이다.
어느 날 덤으로 얻은 인생의 마침표를 다시 상기한다.
끝이 있기에 오늘이 소중하고, 유한하기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빛난다.
감사는 모든 것이 완벽해서 누리는 감정이 아니라, 불완전한 삶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것을 발견하는 마음이다.
감사만이 꽃길이다.
그것이 나의 삶의 소명이요, 세상에 전하는 나의 메시지다.
살아 있음의 경이로움을 전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마음의 길을 내며, 누군가의 삶에 작은 쉼표 하나를 놓아주는 사람.
감사의 나팔수로 살아가고 싶다.
마음의 쉼표를 찍으며, 다시 감사의 꽃길을 걷는다.
글/김영란 교수
hanbitinews@naver.com
저작권 Ⓒ (한빛국제뉴스)무단전재 및 재 배포 금지
후원:(하나은행)702-911245-65807 예금주:한빛국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