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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누구에게 전화하고, 무엇을 물으시겠습니까?

김영란 입력 2026.10.26 09:19 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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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누구에게 전화하고, 무엇을 물으시겠습니까?


바쁜 일상에도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다. 내게는 토요일 오후가 그렇다. 줄줄이 이어지는 코칭을 마치고 오후 네 시쯤이면 가까운 스크린골프장에서 반가운 사람과 만난다. 공 한 게임 치고, 맛집을 찾아 저녁을 나누며 가볍게 반주도 한다.

공이 잘 맞으면 잘 맞는 대로 기분이 좋고, 안 맞으면 안 맞는 대로 할 말이 많다. 골프채로 공만 치는 줄 알았더니, 쌓인 스트레스도 함께 쳐내는 시간이다.

그러나 해마다 9월부터 12월 초순까지는 그 즐거움도 잠시 접어둔다. 대입 면접 코칭이 몰리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앞날을 함께 고민하다 보면 토요일 오후도 어느새 밤이 된다. 골프공은 쉬는데 내 입은 쉴 틈이 없다.

그런 와중에 전화 한 통이 왔다. 특별한 용건 없는 안부 전화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을 장난으로 감췄다.

“이거, 생사 확인 전화인가?”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무척 기뻤다. 바쁜 나를 잊지 않고 떠올려준 사람이 있다는 것. 전화벨 소리 하나에 마음이 환해졌다.

그는 색소폰과 드럼, 기타를 즐기는 뮤지션이다. 그런데 직업은 경찰이다. 무대에서는 흥을 살리고, 현장에서는 질서를 지키는 사람이다.

YCY명사과정을 세 번이나 수강한 인연으로 가까워졌다. 시작은 사제지간이었지만 지금은 친구처럼 지낸다. 내가 말을 가르쳤다면, 그는 내게 용건 없이도 전화하는 정을 가르쳐주는 셈이다.

그 인연을 만들어준 YCY명사과정은 지금 잠시 쉬고 있다.

지인의 추천과 소개로 이어온 강좌인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누군가에게 수강을 권하는 일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좋은 뜻으로 건넨 권유라도 상대에게는 거절하기 어려운 부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나려고 만든 강좌가 사람을 부담스럽게 해서는 안 되지.’

그래서 조급하게 모으기보다 필요한 사람이 스스로 찾아오는 길을 택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이 기뻐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찾아온다는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의 마음이다.

그랬더니 뜻밖의 요청이 돌아왔다. 제2기부터 제11기까지 함께하며 회장으로 애써온 한동욱 회장이 2027년부터 다시 열어달라는 것이다.

내가 “오십시오” 하던 때에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쉬고 나니 “다시 합시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사람 마음이란 참 묘하다. 붙잡을 때보다 여백을 내어주었을 때 더 가까이 다가오기도 한다.

전화 한 통이 그랬고, 오늘 코칭에서 만난 학생의 질문도 그랬다.

대전외국어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여학생인데 질문을 곧잘 한다. 답변을 듣고 고개만 끄덕이는 것이 아니라, 궁금한 대목을 짚어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는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요?”

그 질문에 나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진다. 학생이 질문 하나를 꺼냈을 뿐인데, 내 안에 있던 설명 두세 개가 덩달아 따라 나온다.

그래서 꼭 집어 이야기해주었다.

“선생님이나 어른들께 귀염받으려면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해. 잘 듣고, 생각하고, 정말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거야.”

이를테면 이런 장면을 상상해보자.

두 제자가 오랜만에 스승을 찾아왔다. 한 제자는 준비해온 칭찬을 쏟아낸다.

“선생님은 역시 대단하십니다. 말씀마다 감동입니다!”

스승은 흐뭇하게 웃는다. 다른 제자는 머뭇거리다 묻는다.

“선생님, 저는 요즘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선생님도 이런 때가 있으셨습니까?”

그 순간 스승이 찻잔을 내려놓고 의자를 당긴다.

“있었지. 내가 그때 말이야…….”

칭찬한 제자는 차 한 잔을 얻어 마셨는데, 질문한 제자는 스승의 인생 한 자락을 얻어 듣는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는데도 스승이 붙잡는다.

“잠깐, 이것도 알아두고 가.”

가르침을 청했더니 시간이 늘어났다. 질문 하나가 상대의 경험을 귀하게 대접했기 때문이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라’는 말이 있다. 길을 확인하는 지혜이기도 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지혜이기도 하다. 혼자 결정하고 결과만 통보하는 후배보다 “선배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하고 상의하는 후배에게 마음이 더 가는 법이다.

물론 질문으로 환심만 사려 해서는 안 된다. 물었으면 듣고, 들었으면 생각해야 한다. 나중에 “그때 해주신 말씀 덕분에 이렇게 해봤습니다”라고 전하면, 질문은 또 하나의 안부가 된다.

AGI 시대를 이야기하며 우리는 질문의 힘을 강조한다. 무엇을 묻느냐에 따라 얻는 답의 깊이가 달라진다.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생각을 묻는 순간, 그 사람의 경험과 마음이 대화 속으로 들어온다.

“잘 지내시죠?” “요즘 무엇이 가장 즐거우세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대단한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당신이 생각났다는 전화 한 통,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질문 하나면 된다.

생사 확인 전화라고 웃었지만, 돌아보니 그 전화는 내 마음이 잘 살아 있는지도 확인해주었다. 반가워할 사람이 있고, 듣고 싶은 목소리가 있고, 다음 만남을 기다릴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 누구에게 전화 한 통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그분께 무엇을 물으시겠습니까?

전화기의 충전량은 자주 확인하면서, 정작 소중한 사람과의 안부는 너무 오래 미뤄둔 것은 아닌지.

오늘은 그 이름 옆의 통화 버튼을 눌러보자. 용건은 없어도 좋다. 반갑다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글/화술경영가 윤치영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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