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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 근육을 키워라

윤치영 입력 2026.10.29 16:38 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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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 근육을 키워라


머리로 세운 인생, 두 다리로 끝까지 간다

퇴직을 앞둔 두 사람이 인생 후반전을 준비한다고 상상해 보자.

한 사람은 노후 자금을 꼼꼼히 계산했다. 예금과 연금, 부동산까지 정리한 뒤 계산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노후 준비는 끝났어.”

다른 사람은 아침마다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가까운 곳은 걸어 다니고, 계단 앞에서는 잠깐 망설이다가도 발을 올렸다.

“자네는 노후 준비 안 하나?”

“하고 있잖아.”

“돈 계산은 안 하고 맨날 앉았다 일어났다만 하는구먼.”

“나중에 내 발로 화장실 가려고.”

웃고 넘길 말 같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웃음이 멈춘다. 통장 잔고를 지키는 일만큼 내 몸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람이 다시 물었다.

“그래도 돈이 있어야 여행도 가지.”

“맞아. 그런데 다리가 있어야 관광버스에서 내리지.”

노후 자금은 통장에도 있어야 하지만, 허벅지에도 있어야 한다. 돈은 여행비를 내주지만, 전망대 계단까지 대신 올라가 주지는 않는다.

나는 평생현역을 이야기할 때 ‘힘’을 강조한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고, 맡은 일을 해내고,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이 실력이고, 실력이 경쟁력이 되며, 경쟁력은 수입으로도 이어진다.

그렇다면 실력이란 무엇인가.

나는 지력, 감성력, 체력이라는 세 가지 힘으로 나누어 본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 느끼고 관계를 맺는 힘,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힘이다.

지력은 자기 분야를 이해하고 문제를 풀어내는 능력이다. 그런데 오래 일했다고 누구나 고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경력은 비슷한데 어떤 사람에게는 일이 몰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품만 몰린다.

차이는 자기만의 ‘한 수’에 있다.

짚신 장수 아버지가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털’이라는 말을 남겼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짚신의 잔털을 세심하게 다듬는 작은 차이가 손님에게는 큰 차이였다는 뜻이다. 남들도 아는 제작법 너머에, 오래 만들고 팔아본 사람만 아는 손끝의 감각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암묵지다. 설명서를 읽는 것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경험 속에서 익힌 판단과 요령이다.

스피치와 면접 코칭도 그렇다. 답변 요령을 아는 것과 눈앞의 사람이 왜 말을 못 하는지 알아내는 것은 다르다. 내용이 없어서 막히는 사람도 있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 첫마디를 꺼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 사람에게 말을 더 보태주면 오히려 더 엉킨다. 무엇을 말할지보다 무엇을 덜어낼지 찾아야 할 때도 있다.

내게도 책을 쓰고 강의하고 코칭하며 쌓아온 시간이 있다. 마흔다섯 번째 책을 준비하는 지금, 책의 권수는 소중한 이력이다. 그러나 책장에 꽂힌 책들이 오늘의 강의를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제가 책을 많이 썼습니다.”

그 말에 청중이 잠깐 고개를 끄덕일 수는 있다. 하지만 이내 이런 눈빛이 돌아올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내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맞는 말이다. 결국 오늘 만난 사람의 막힌 말문을 열어주고, 복잡한 생각에서 핵심을 찾아주어야 한다. 어제의 저서는 이력이고, 오늘 만들어내는 변화가 실력이다.

두 번째는 감성력이다.

나는 이것을 ‘감·촉·혼’으로 표현하고 싶다. 분위기를 읽는 감,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촉, 자기 일에 마음을 담는 혼이다.

같은 말을 해도 누구의 말은 귀에 머물고, 누구의 말은 가슴에 남는다. 정답을 말했는데 관계가 틀어지는 사람이 있고, 말없이 곁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다.

“힘내세요”라는 말도 그렇다. 다시 일어설 준비가 된 사람에게는 응원이 되지만, 잠시 주저앉아 울고 싶은 사람에게는 또 하나의 숙제가 될 수 있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입이 빠르다는 뜻이 아니다. 때로는 입보다 마음이 먼저 도착해야 한다.

감성력은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자연 속을 걸으며 자란다. 같은 길도 서둘러 지나갈 때와 천천히 걸을 때 보이는 것이 다르다. 목적지만 보고 걸으면 나무는 배경이지만, 걸음을 늦추면 나뭇잎 하나에도 계절이 보인다.

사람도 그렇다. 내 할 말만 준비하고 있으면 상대는 청중이지만, 표정과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이면 한 사람의 사정이 들리기 시작한다.

꽃 이름 하나를 알아가는 일, 노래 한 소절에 울컥하는 일, 지친 친구의 목소리에서 평소와 다른 기색을 알아채는 일. 당장 돈이 되지 않아 보여도 삶과 사람을 이해하는 공부다. 나는 그런 공부가 강의실 밖에서 강의실 안으로 따라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력과 감성력을 이야기하다 보면 마지막에 꼭 부딪히는 것이 있다.

체력이다.

머릿속에는 하고 싶은 일이 가득하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다. 그런데 몸이 말한다.

“좋은 계획이네. 자네 혼자 다녀오게.”

큰일이다. 기획자는 나인데, 실행 부서인 몸이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마음은 여행 가방을 쌌는데 몸은 이불을 끌어당긴다. 머리는 새로운 일을 해보자는데 허리는 일단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한다. 이렇게 몸과 협상이 길어지면 하루가 지나간다.

더 곤란한 것은 몸이 보내는 신호를 성격 변화로 착각하는 일이다.

‘내가 언제부터 사람 만나는 것을 이렇게 귀찮아했지?’

‘예전에는 저런 제안이 오면 신이 났는데.’

물론 마음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의욕이 없어서 움직이지 않는 줄 알았는데, 움직일 힘이 달렸던 것일 수도 있다. 하루 종일 지친 몸으로는 반가운 전화에도 목소리가 무거워진다. 하고 싶은 일도 자꾸 다음 주로 미루게 된다.

그래서 나는 허벅지 근육을 키우자고 말한다. 종아리도 챙기자고 말한다. 나를 일으키고,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고, 돌아올 때까지 버텨주는 두 다리에 관심을 주자는 것이다.

젊을 때는 다리가 나를 위해 일하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가자면 가고, 서라면 서고, 늦었다 싶으면 뛰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부려먹었다. 그러다 어느 날 계단 앞에서 숨을 고르며 깨닫는다.

‘아, 이 친구들도 관리가 필요하구나.’

자동차는 소리가 조금만 달라져도 정비소에 가면서, 몸이 보내는 신호에는 “나이 들어서 그렇지” 하고 넘어가기 쉽다. 나이를 먹는 일은 피할 수 없어도 몸을 돌보는 일까지 미룰 이유는 없다.

운동을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다. 자기 몸에 맞게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고, 무리가 없다면 스쿼트를 하고, 벽을 짚고 발뒤꿈치를 들어 올릴 수 있다. 팔굽혀펴기도 몸 상태에 맞는 방식으로 해보면 된다.

핵심은 생활 속에서 반복하는 것이다.

운동할 시간을 따로 떼어놓는 것도 좋지만, 일상에 움직일 틈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오래 앉아 있었다면 잠깐 일어나 몸을 풀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가고, 하루 중 언제 움직일지 자기만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운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준비가 너무 많은 사람도 있다. 운동화를 고르고, 운동복을 주문하고, 운동 영상을 저장한다. 며칠 뒤 택배 상자가 쌓이면 뿌듯해진다.

운동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는데, 준비하느라 벌써 피곤하다.

운동복을 샀다고 몸이 단련되는 것은 아니다. 헬스장 등록증도 내 대신 땀을 흘려주지 않는다. 운동 영상 속 사람이 스쿼트를 백 번 해도 내 허벅지는 그 장면을 구경했을 뿐이다.

내 몸의 일은 결국 내가 해야 한다.

나는 골프를 즐기고 트레킹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운동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나가야 할 이유가 생기고, 사람을 만날 계기도 생긴다. 다만 좋아하는 종목 하나에 모든 것을 맡기기보다 걷기와 근력 운동, 균형을 잡는 움직임을 함께 챙기려 한다.

운동도 평생현역이어야 한다. 어느 날 의욕이 넘쳐 무리한 뒤 오래 쉬는 것보다, 자기 몸의 사정을 살피며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 남의 기록을 따라가느라 내 몸과 사이가 나빠져서는 곤란하다.

골프공이 뜻대로 날아가지 않는 날도 있다. 그럴 때는 속이 상한다. 분명 내가 쳤는데 공은 자기 인생을 살러 간다.

그래도 운동을 마치고 나면 생각을 바꿔본다.

‘공은 말을 안 들어도, 오늘 내 몸은 움직였구나.’

타수만 계산하면 손해 본 날도, 몸을 움직이고 웃은 시간까지 계산하면 남는 것이 있다. 잘하려는 마음과 오래 즐기려는 마음이 함께 가야 한다.

AGI 시대를 이야기하면 지식과 기술, 노동의 가치가 어떻게 달라질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나는 그럴수록 ‘내가 무엇을 더 깊이 길러야 할까’를 묻고 싶다.

기계가 많은 답을 내놓을수록 나는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 표현을 대신 만들어줄수록 나는 누구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것인가. 시간을 아껴줄수록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산길을 걸으며 나누는 대화, 오랜 친구의 얼굴을 보고 터뜨리는 웃음, 강의를 마친 뒤 온몸에 남는 피로와 보람. 내 삶의 이런 순간들은 내가 직접 살아야 한다.

그 자리에 가기 위해서도 몸이 필요하다.

지력으로 방향을 찾고, 감성력으로 사람과 이어지고, 체력으로 그 길을 걸어간다. 세 가지 힘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밖으로 나가 몸을 움직여야 새로운 풍경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야 질문이 생기며, 그 질문을 붙들고 생각하다 보면 배움도 깊어진다.

처음 이야기 속 두 사람에게로 돌아가 보자.

어느 날 노후 자금을 꼼꼼히 준비한 친구가 여행 안내문을 들고 찾아왔다.

“여기 한번 가보세. 경치가 기가 막힌다네.”

아침마다 앉았다 일어나기를 하던 친구가 안내문을 들여다보았다.

“좋지. 그런데 전망대까지 계단이 좀 있구먼.”

“그게 조금 걸리네. 그냥 버스 안에서 봐도 되겠지?”

“아까운 돈 내고 버스 유리창만 닦아주고 오려고?”

둘은 한바탕 웃었다. 그러자 운동하던 친구가 의자 하나를 옆으로 당겨놓으며 말했다.

“돈 준비는 자네가 잘했으니, 이제 다리 준비는 나하고 같이 하세.”

한 사람의 준비가 틀렸던 것이 아니다. 서로의 준비에 빠진 부분이 있었을 뿐이다. 통장의 돈도 필요하고, 그 돈으로 마련한 기회를 누릴 몸도 필요하다.

평생현역은 오늘도 자기 몫의 일을 하고, 새로운 일에 마음이 움직이고, 누군가를 만나러 나설 수 있는 삶이다. 내게 허벅지 근육을 키우는 일은 그 삶을 오래 이어가기 위한 준비다.

내일의 계획을 세웠다면 오늘은 의자에서 한 번 더 일어나 보자. 머리로 세운 인생 후반전의 계획을 두 다리에도 알려주자.

혹시 허벅지가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왜 갑자기 나를 이렇게 챙기십니까?”

“자네하고 오래 다닐 데가 많아서 그러네.”


화술경영가 윤치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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